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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온그리메의 [바람의 시간]
우리나라의 유인도로는 남쪽 끝 섬인 마라도에는 슬픈 전설이 있다. 부모에게 버려져 어느 집의 아이를 보는 일을 하던 소녀가 있었다고 한다. 소녀가 일하던 집이 마라도에서 머물다 계절도 그렇고 식량도 떨어져 떠나려고 할 때 자꾸 풍랑이 일어 떠날 수가 없었단다. 모두들 걱정하는 터에 꿈에서 누군가를 제물로 놓고 가야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떠나기 위해 모두 바닷가에 모인 날, 주인 아주머니가 소녀에게 "애기 업는 요를 가져오라"라고 했고, 소녀가 그걸 가질러 간 사이에 사람들은 떠나버렸다. 소녀는 물가에서 발을 동동구르며 데려가 달라고 울부짖었다고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모른 척 제주도로 돌아갔다. 몇 년 후에 사람들이 다시 마라도에 가보니 하얀 뼈만 남아 있었다고 한다. 이 전설을 듣..
우연히 빙 돌아간 작은 골목은 공사로 콘크리트가 다 벗겨져 있었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흙길. 그리고 그 길 위에 화려하게 흩어진 거울조각들. 한때는 이 거울을 보며 누군가가 '세상에서 누가 제일 아름답니?'라고 물었을까? 가벼운 퇴근길에서 깨진 거울조각들은 따뜻해진 햇살을 반사하고 있었다.
하늘과 땅과 물의 경계가 모호하듯이 삶 역시 그러하니 모든 것을 이것과 저것으로 나누는 것도 옳은 것만은 아니라고 비 내리던 하늘은 나에게 이야기해주었다. 깊어보이는 물은 실제로 깊은 것이 아니어서 보이지 않는 길은 실제로 없는 것은 아니어서 정말 원한다면 텀벙텀벙 들어갈 수도 있는, 있었던, 있을 길이어서 그래서 늦은 밤 비를 맞고 걸어가던 그 길은 가슴 저릴만큼 아프지만은 않았다. 언젠가 또 비오는 날 웃으면서 찾을 수 있기를.
한여름, 떨어진 꽃잎처럼 바닥에 잠시 몸을 맡긴 햇살 방울들. 손으로는 모을 수 없는, 잡을 수 없는 한 낮 햇빛의 작은 유희 구름따라 숨바꼭질 하고 바람따라 방울방울 웃어대는 여름날의 한 때여. --------------- 우연히 본 길 가 벤치쪽의 햇망울들이 하도 예쁘길래 한참을 보다가 사진기를 꺼내 들었다. 땀은 비오는 듯 흐르고, 숨막히는 더위는 끔찍했지만 따가운 여름날 잠시 본 예쁜 풍경이었다. --근데 글을 쓰다보니 오글오글... ;;;;
이래저래 꼬인 하루. 해야할 일은 쌓이는데 일은 손에 잡히지 않았다. 이래저래 벌린 일들이 자꾸 틀린 것으로 드러날까봐 노심초사하기 시작하면서 짜증은 극에 달한다. 사진조차 마음대로 찍히지 않는다. 셔터를 누르다 문득 생각한다. 왜 이렇게 짜증이 나는 거지? 그건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때문. 부족함을 인정하기 싫기 때문에. 인정하면 오히려 사실이 되어버릴까봐. 흔히들 하는 어른들의 실수. 부족함을 인정하면 노력해야한다. 노력하지 않는 인정이란 스스로를 비하하는 것에 지나지 않고 점점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가두어갈 뿐이다. 생각해보자. 내가 잘났는가? 아니.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거지? 그동안 나태했기 때문에. 그럼 어떻게 해야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있지? 정신차리고 다시 노력해야지. 나는 아직은 젊다. 인..
곧 땅이 마르고 하늘이 푸를 날이 올테지. 그러니까.. .그 때까지만 버티자. 먼 기억 속의 하얀 웃음과 초록 바람만 기억하자. 그럴 수 있을 거야. 그래야하니까.
천지만물이 시작이 있으니 그 끝도 있으리라. 물처럼 끝없이 순환하며 계속 새로운 모습으로 살 수는 없을까 고여서 썩지 않고 조용히 흘러가며 하늘로 올라갈 수는 없을까? 다시 물방울 되어 내려올 그 때까지 마음 깊은 곳까지 자유롭고 싶다
계절은 이제 여름을 지나 찬바람 부는 가을로 가는데 너는 아직도 보내고 싶었던, 보내지 못했던 그 여름의 추억만을 기억하려 하는구나. ============ 옛날 사진 올리기
항상 첫째였는데, 올해는 그렇지도 못했다. 그늘에 묻혀 제대로 모습을 뽐내지 못하였다. 뚝뚝 듣는 꽃잎들이 얼굴을 땅에 대고 흐느꼈다. 고개 들지 못하고 흘리는 굵은 방울들. 둘째는 붉은 벚꽃받침. 꽃잎은 떼를 지어 왔다가 와르르 떠나고 꽃받침은 조금 지났다고 낙하를 시작하였다. 대굴대굴 몸뚱이를 굴리며 무거운 고개를 이리저리 가누지 못한다. 긴 몸뚱아리 겹치고 겹쳐 함께 쓸려 애닯은 한숨 그리고 수수꽃다리가 뒤따라 내렸다. 비처럼 쏟아졌던 향기. 바람에 흔들리던 미소. 따뜻함에 놀라던 마음은 후드득 떨어진 수수꽃다리만큼이나 갑작스럽게 떠난다. 봄이 간다. 우르르 왔다가 우르르 가버리는 손님처럼. 그 머뭄은 날이 갈수록 짧아져 정신차리지 않으면 뒷모습조차 보기 어렵다. 녹음은 숨막히게 짙어져가는데 봄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