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온그리메의 [바람의 시간]
여행을 준비하며 본문
지금까지 내가 다녔던 여행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이라면 아무래도
지난 겨울 다녀온 스페인일 것이다.
여름에 유럽을 다녀왔지만, 더 멋진 것, 좋은 것, 재미있는 것들을 보고 듣고 느꼈지만
그래도 첫 나홀로 해외여행에서 느꼈던 손끝, 발끝까지 짜릿한 긴장감과 흥분은
다른 여행들은 따라오질 못한다.(라고 해봤자 그 후 여행은 딱 한 번 갔구나)
아무래도 맘 내키면 아무 곳이나 퍼질러 앉아버리는 괴짜 성격이고 길을 못찾아 헤매고
다니기 일쑤이고 체력도 없어 힘들면 그냥 관둬버리는 성격인지라 누군가와 함께 있으면
무척 부담스러워져버린다.
그래서그런지 처음 비고에서 기차역을 찾아 거리를 걸었던 때와 기차표를 살 때 역무원의 목소리와
기차역에서의 기다림과 낯선 열차 밖의 풍경과 산티아고의 기차역에서 내려 호텔을 찾아갈
때 혼자서 느껴야만 했던 것들을 잊기가 쉽지 않다.
걷가다 힘들어서 돌아온 숙소에서 낮잠을 자고, 해질무렵 다시 찾아갔던 산티아고 대성당의 저녁노을,
좁고 어두웠던 1인용 숙소의 작은 침대, 수퍼마켓에서 사와서 만들어먹던 보까디요와 새콤한 요거트의 냄새,
긴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찾아간 미술관에서의 도둑잠.
지금 생각해도 너무 즐거웠다. 그 당시엔 겁만 났을 뿐이었지만.
이번 겨울에도 스페인에 무척 가고 싶었고, 계획까지 다 잡아놓았었다. 보름간의 거창한 계획으로
스페인의 중소도시를 돌아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여름의 여행에서 너무 많은 용기를 잃어버린 탓에 혼자
떠나는 길이 무척이나 두려워져버렸고, 때마침 이러저런 이들이 겹쳐 결국 포기하고 행선지를 제주로 돌
려버렸다. (이 덕에 남는 돈은 여기 저기 알뜰하게 잘 썼다. 렌즈도 사고 갤탭도 사고, 장난감도 많이 사고
가족도 챙기고....)
돌아오는 비행기표도 예약하지 않은 제주행. 일정조차 여기 저기 붕 뜬 상태이다. 하도 자주간 제주라서
어쩌면 이젠 새로울 것이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다시 혼자 걷는 용기를 얻어올 수는 있을 거라고
그렇게 믿고 있다.
숨쉬기조차 어려웠던 그 때에 용기를 내어 미친듯이 걸었던 제주의 길들. 눈물조차 나지 않았던 그 순간에
길 위에서 내가 알게 된 것은 내 손에서 떠난 일로는 어떠한 고민을 한다해도 아무런 의미가 없으니 차라리
마음이라도 편히 하자는 작은 진리였다.
낯설고 인적없는 길들을 걸으면서 신기하게 보았던 풍경들을 다시 마음에 담아와보자.
자동차도 드문 도로 위에서 나 혼자 신나게 펼쳐보였던 노래자랑도 즐거웠지 않았나.
가다가 힘들면 아무 곳이나 찾아가 하룻밤 묵어가기도 했었지. 그것이 내나라 여행의 장점이니까.
겁내지 말고 용기를 내 보자. 매번 하는 다짐.
용기를 내 보자. 겁 먹지 말자.
오늘 북한의 일로 들썩거리는 나라를 보면서 어쩌면 차라리 스페인에 못가게 된 것이 다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잠깐 해본다. (사실 요즘 유럽이 분위기가 않좋은 것이 안가게 된 이유 중의 하나였는데 오히려
우리나라의 분위기가 이래 되어버렸다) 사실 어쩌면 제주도 못갈지 모른다는 생각에 많이 걱정이 되긴 한다.
그래도 별 일 없기를 빌면서 여행 준비를 계속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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