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온그리메의 [바람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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뽈뽈뽈/서울

길 위에서

라온그리메 2009. 6. 14. 20:03


 오늘 현대미술관에 들렀다가 선바위까지 걷던 중에 길에 앉아있는 까치 한 마리를 보게 되었다. 상태가 심각해 보이는 까치는 고개조차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나마 멀쩡한 한쪽 눈마져 뜨지 못하면서도 그래도 쓰러지면 죽는다고 느껴서인지 악착같이 서 있었다.


 내가 계속 바라보자 나무 위에 앉아있던 까치들은 계속 미친듯이 울어대며 나를 내쫓으려는 듯 나뭇가지들을 마구 떨어뜨렸다. 처음엔 왜 그러는지 몰랐는데... 내가 물러서자 죽음처럼 찾아든 적막... 그리고 다가서면 다시 울어대는 까치들.

 햇볕이 뜨겁게 내리 쬐는 보도블럭 위에서 까치와 그의 친구들이 그렇게 있었다.

 처음엔 '한 번 찍어보자'라는 마음으로 독하게 기다리다가 기다리는 내가 너무 싫어져서, 차마 쓰러지는 걸 보질 못하겠어서 돌아서는데... 멀리서 돌아보니....새는 비칠비칠 움직여 길 섶에 서 있는 개나리 나무 아래로 사라지고 있었다.

 
 .... 가슴이 먹먹해지고.... 내가 아는 여러 죽음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뇌출혈로 길에서 쓰러진 후 아무도 발견못해 몇시간을 방치되었다가 실려가던 엠블란스에서 얼마나 더 아프면 죽을 수 있냐고 물었다던 노부인의 이야기가 떠오르면서....존엄사와 안락사에 대해 다시 한 번 많이 생각하였다.

 

 사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죽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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