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뽈뽈뽈/동유럽 2012

[오스트리아]잘츠카머구트-다흐슈타인과 다섯 손가락

라온그리메 2012. 8. 29. 23:28



http://www.dachstein-salzkammergut.com/


 


 

다음날 아침 다흐슈타인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숙소를 나섰다. dachstein은 ' 희고 높은 산'이라는 뜻이라고 하는데 높이는 3800m란다. 그러면... 한라산 두개 쯤 포개 놓은 높이일까?

 

버스는 기차 역 앞에서 서는데, 자주 있는 건 아니라서 시간을 잘 맞춰야 한다.


버스 타는 곳.







버스는 마을을 다 누비고 언덕길을 돌아올라 우리를 매표소 앞에 내려주었다. (상당히 돌아간다)


매표소에서 어떤 표를 사야하는가에 대해 잠시 고민하다가 아무래도 얼음동굴과 맘모스(매머드)동굴 둘 다 보기는 어려우니 하나만 보기로 하고 케이블 1,2+ 동굴1 티켓을 샀다. 가격이... 37유로. 비싸긴 하였다. 큼. 








첫번째 케이블카에서 내리자 얼음동굴과 맘모스동굴로 가는 출구가 보였다. 나가기 전에 표를 보여주니 그룹을 써준다. 얼음동굴 투어는 그룹별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룹확인을 받아야 한다.














얼음동굴까지는 약간 걸어 올라가야한다. 아주 심한 경사는 아니지만 전혀 모르고 간 사람들이라면 좀 당황스러울지도 모르겠다. (구두는 안됨. 올라가는 길도 그렇고 얼음동굴 안은 꽤 미끄러움)


동굴 입구에 어느 정도 사람들이 모이자 가이드가 나와서 영어로 설명을 들을 사람들을 따로 모았다. 투어는 영어 설명 후에 독일어 설명을 하는 순서로 진행되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챙겨온 옷을 꺼내어 주섬주섬 끼어입고 추위를 대비했다. 나는 긴옷+반팔+바람막이점퍼+목도리를 준비했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아주 춥지는 않았다. 

그래도 언덕을 오르느라 흘렸던 땀은 동굴에 들어가자 쑥 들어갔다. 


언덕을 따라 내려가자 처음엔 그냥 동굴이 보였다. 곰의 뼈가 발견된 곳과 이런 저런 곳들을 쭉 지나가자 오르막 계단이 나왔다. 계단은 생각보다 꽤 긴 편이었고, 바닥은 물에 젖어 미끈거려 신경이 바짝 곤두섰다. 여기서 미끄러져 다치기라도 하면 국제망신이닷!을 속으로 외치며 조심조심 부지런히 올라갔다. 계단을 올라가는 도중부터 얼음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제서야 얼음동굴의 진짜 모습이 천천히 드러났다. 얼음들은 생각보다 많이 컸다. 가이드 말로는 이 얼음들은 계속 커지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언젠가는 천정에 닿겠구나..싶은 생각에 헤~하며 한 번 더 보게 되었다.


점점 규모가 커지는 얼음들을 보며 관광객들은 계속 위로 위로 올라갔다. 동굴의 조명은 그리 센 편이 아니라서 사진 찍기에는 많이 부족했다. 나름 의기양양하게 플래시 없이 사진 찍었는데, 나중에 돌아와서 보니 역시 무리였던 듯하다. iso를 올린 건 노이즈 만방이고, 그나마 흔들렸다.  오히려 일행의 휴대폰 카메라가 더 잘 찍혔던 것 같았다. 아무튼- 그래서 건진 게 없다. orz. (찍힌 건 챙피할 정도. 사람들이 돌아볼 정도로 미친듯이 찍었더랬는데... ㅡㅠ)


혹시 사진이 궁금하신 분들은 여기로 들어가보시길.

http://www.dachstein-salzkammergut.com/en/dachstein/below-ground/dachstein-ice-cave/















10m(?)짜리 얼음동굴의 마스코트(?)와는 달리 내 기억에 남은 것은 마지막 무렵에 보았던 얼음 기둥이었다. 동굴 깊은 곳에서 시작되어 끝이 보이지 않는(어두워서) 얼음기둥을 내려다보노라니 뭔가 좀 오싹했달까.(만약 떨어지면?) 아, 그러고 보니 나 고소공포증에 폐소공포증도 살짝 있었지? 그런 걸 떠나서 어쩐지 동굴에 들어오면 예의 영화 '디센트'가 생각난단 말이야..ㅡㅡ;;;



동굴의 출구는 입구의 윗쪽에 있었다. 출구문 위쪽으로는 구멍이 하나 있는데, 그건 원래 동굴탐험 때 쓰여졌던 곳이라고 한다. 출구로 쓰기에는 적합하지 않아 밑쪽으로 굴을 하나 더 뚫었다는 얘기였다. 

동굴 밖으로 나오기 전 가이드는 질문을 받았는데, 한 꼬마가 질문을 계속했다. 솔직히 이런 상황에서는 다른 사람들 다 내보내고 개인적으로 얘기하는 게 우리 정서인데(나만의 정서인가?) 의외로 가이드는 찬찬히 아이의 몇가지 질문을 끝까지 듣고 대답해주었다. (독일어라서 무슨 질문인진 잘;;;) 나름 인상깊었다. 흠..



어둡고 춥던 동굴을 나오자 환한 풍경이 우리를 맞아주었다. 투어 시간이 꽤 길어서 시간은 훌쩍 지나있었다. 돌아가는 길에 잠시 체험학습용인듯한 전시관을 보았는데, 별로 재미는 없었다;; 배가 출출한 느낌이어서 케이블카 정류소 옆의 음식점에서 식사를 하면 좋겠다~하는 생각을 잠시 하였으나 일정상 패스.






두번째 케이블카를 타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어마어마하게 큰 가방을 짊어진 젊은 여자들이 줄을 섰다.엄청나게 큰가방에 질려서 키가 커지면 힘도 좋아지나~종주라도 하려는 건가~싶었다. (나중에 다섯손가락에서 보니 그 가방 속에 든 것은 패러글라이딩 낙하산이었다.)  아무튼 사람을 꽉 채운 두번째 케이블카는 어젯밤 오버트라운에서 보았던 그 줄을 따라 산으로 올라갔다. 


케이블카에서 내려 정류장에서 나오자 와아~하는 탄성이 나올만큼 엄청난 풍경이 눈 앞에 펼쳐졌다. 색이라고는 하얀색과 회색밖에는 없는 어마어마하게 큰 산들이었다. 뭔가 굉장히 비현실적인 느낌이랄까. 주변풍경도 살풍경해서 좀 긴장이 될 정도였다. 


정류장에서 보니 또하나의 케이블카가 다른 편으로 연결되고 있었는데, 아마도 매표소에서 봤던 것이었는 듯 싶었다. (하지만 그쪽으로 가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순간 '저 케이블카 타고 저쪽에서 이쪽으로 걸어와 봤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10초쯤 해봤다;;








사람들을 따라 길을 걸어나가자 조금씩 풀이 드러나더니 어느 순간 잘츠카머구트의 산맥들과 할슈타트 호수가 눈으로 들어왔다. 비정상적인 색감...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는 먼 푸른 산들이며 호수에 할 말을 잠시 잃을 정도였다. 할슈타트에서 팔던 달력에서 본 (항공사진으로 알았던) 사진들이 눈 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조금은 긴 길을 한참 걷다보니 한 때의 군인들이 지나갔다. ... 군인인가? 군인처럼 보였는데, 각자 자기 가고 싶은 길로 막 가고 있었다. 군인이었을까?






빙하로 인해 괴상하게 쪼개진 돌들과 새와 놀고있는 사람들, 의자에 앉아서 쉬고 있는사람들을 지나 한참을 걸어가자(당연히 나는 뒤쳐졌고 일행은 이미 앞서 갔음) 다섯손가락 전망대가 보였다.











여기서 아쉬운 점 하나.

내내 말하듯이 나는 고소공포증이 있다. 그래서 다섯손가락 전망대에선 제대로 된 사진을 거의 찍지 못했다. (ㅡㅠ) 시선은 3km밖만을 보고 절대로 바닥을 안 보려 노력했으니. 사실은 좀 둘러보려고 했는데, 내 옆 손가락에 있던 꼬맹이가 일부러 쾅쾅 뛰는 바람에 혼비백산해서 얼른 나오고 말았다.......그 꼬맹이 녀석, 그 자리 한 번 가보려고 했지만 절대 안 비켜주더만.(뿌드득)

액자에 가서 사진 찍을 때도 뒤로 돌아서 엉금엉금 갔다. 지금생각하면 되게 아쉽다. 







아까 엄청난 가방을 들고 올라오던 사람들이 가방에서 낙하산을 꺼내더니 패러글라이딩을 시도하는 게 보였다.

tv에서 본 패러글라이딩은 안전요원이 따라 붙는, 프로펠러가 달린 것이었는데, 이 사람들은 개인적으로 하는 것으로 보였다. (가격은 좀 비싸겠다. 케이블카요금이 있으니)

쉽게 날아가지는 게 아니라서 바람을 타기 위해 꽤나 노력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세상에 쉬운 일이 없구나-싶었지만, 멋진 풍경을 발 아래 두고 너른 하늘 속으로 날아가는 모습은 고소공포증 환자인 나도 시도해보고 싶을 만큼 멋졌다.




다섯손가락 전망대를 본 후에 언덕위로 올라가 다시 주변을 둘러봤다. 앉아서, 누워서 쉴 수 있는 공간들이 많아서 쉬고 싶은 생각도 있었는데, 햇볕이 워낙 쨍쨍이고 일행의 일정 문제가 있어 다시 케이블카를 타러 내려왔다.






걸어가다보니 올라갈 때 보았던 얼음 위로 아이들이 썰매를 타고 있었다. 나도 타고 싶었으나 어른은 없는 관계로 포기했다. 재미있어 보였다....(썰매는 비치용인 듯)




뭐, 이 때까진 그리 큰 문제는 없었는데, 정작 문제는 내려와서 발생했다.

다흐슈타인은 유명한휴양지이기는 하지만 일단 외진 곳에 있는 관광지라서 대중교통이 그다지 좋지는 않다. 

따라서 버스 시간을 잘 알아뒀어야 하는데, 그걸 잊고 있었던 거다. 시간표 상에 있는 버스를 한참 기다려보았으나 결국 버스타기는 포기할 수 밖에 없었고, 우리는 잠시 고민하다 올라왔던 길의 기억을 더듬으며 오버트라운까지 걸어서 내려가기로 했다. 





내려오는 길은 내리막길이라 별로 힘들지는 않았고, 워낙 풍경이 좋아서 나름 즐거운 시간이었다. 마을입구에 내려오자 마을 외곽을 싸고 있는 운동장들이 보였다. 잔디로 가득찬 운동장이 대여섯개가 넘게 쭉 있었는데, 사람 없는 운동장을 가로지르는기분도 꽤 괜찮았다.







마을로 가는 다리위를 지나노라니 어떤 가족이 개울에 발을 담그고 있다가 떠나는 것이 보였다. 걸어오느라 더웠던지라 우리도 양말을 벗고 개울에 발을 담궜다. (작년 스위스에서도 이랬는데; 물만 보면 발을 넣어보려고 하는 건, 설마 우리나라 사람만은 아니겠지?;;;;) 엄청나게 맑은 물은 엄청나게,엄청나게, 엄,청,나게 차가웠다. 발을 못담그고 있을 정도로 차가웠다. 조금만 덜 차가웠어도 좋았을 것을.




어제 가지 않았던 마을의 다른 쪽을 걷다가 마트도 발견하고 사람이 많은 음식점도 발견했다.마트에서 간식거리를 사들고 숙소에 들어와 잠시 쉬다가 보니 (사실은 일행이 오후에 할슈타트를 갈 예정이었는데, 너무 늦게 내려오는 바람에 포기하였다) 어느새 슬슬 저녁이 되고 있었다. 혹시 숙소에서 저녁을 먹을 수 있냐고 물어보니 그러려면 미리 아침에 주문을 해야한단다. 그럼 근처에 괜찮은 음식점을 소개시켜달라고 하니 아까 우리가 보았던 음식점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음식을 추천해달라고 하니 자기가 좋아하는 건 할슈타트 호수에서 잡은 생선요리라고 했다.


음식점과 음식을 추천받아 음식점에 가니 꽤 많은 손님이 있어 바깥은 이미 다 차 있었다. 웨이트리스 한 명이 영어를 잘 해서 계속 우리 주문을 받아주었는데,처음에 우리가 샐러드 하나와 생선 하나만 주문하자 이상하다는 듯 다시 확인했다. 음식이 나온 걸 보고 왜 그렇게 물었는지를 알 수 있었는데... 할슈타트 생선요리의 양은 정말 딱 생선 한마리였던 것. 헐.... 둘이서 어떻게 고거 먹고 견디나. 결국 눈물을 머금고 고기 요리를 다시 주문했다.

그랬더니 아까 우리가 먹은 샐러드가 또 나온다. 같이 나오는 거란다. 으어.... 그냥 처음부터 생선이랑 고기랑 시켰으면 좋았을 것을. orz. 역시 여행의 가장 난코스는 식당이다.



할슈타트 맑은 물에서 나온 생선 요리를 먹으며(맛보다는 의미가 더 컸다고 본다) 그좋은 곳에서 쓸데없이 정치, 사회얘기하며 분위기 흐린 건 후회 중. 미안해요...내가 나빴어. ㅡㅡ;;;; 이건 습관이라니까.... ㅡㅠ)




어두워진 길을 걸어 얌전히 숙소로 돌아오는데, 두명의 남자가 지나가며 우리에게 뭐라고 큰 소리를 질렀다. 무슨 뜻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좋은 의미는 아닌 것이 확실했고, 겁을 먹은 우리(나만 그랬나?)는 숙소로 바삐 걸어야했다. 그 바람에 기분이 상하여 별이 총총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밤에 자 버렸다................. 칫.










오버트라운에서의 마지막 날, 일행은 할슈타트로 떠나고 나는 오버트라운에서 빈으로 가는 기차를 타기로 하고 역 앞에서 헤어졌다.

어제 먹으려고 샀으나 맛이 없어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던-양만 많은 과자를 들고 캐리어를 질질 끌며 호숫가로 향했다. 그리고 백조와 오리 약올리기 한 판.


물 밖으로 나오지 않았던 큰 백조는 작은 백조가 못마땅한지 자기 근처로 오면 막 쪼아댔다. 나중에는 손을 내밀어도 덥석덥석 물었는데, 백조의 입 안은 뾰족한 것 없이 넙적한 요철정도가 있어서 아프지는 않고 그냥 신기했다.  있는 과자를 다 털어주고 다시 역에가서 한참을 앉아이다가 기차를 탈 수 있었다.

















내려야 할 역 찾느라 긴장했었는데, 리투앙 역은 상당히 큰 역이어서 사실 그런 걱정이 필요가 없었다;;








첫 기차는 리투앙까지 열심히 달렸다. 기차 안에는 일본인 관광객과 몇 몇 승객밖에는 없어서 조용하고 좋았다. 창 밖으로 보이는 다른 호수들의 풍경도 아주 아름다웠다. 마음 같아선 중간에 내리고 싶을 정도였달까.








리투앙에 내려 빈으로 가는 열차를 갈아탔다. 이전 열차와는 다르게 사람들이 좀 많은 편이었지만, 전원이 있어서 열심히 충전도 하고 음악도 들으며 지루하지 않게 이동할 수 있었다.


(...obb에서 와이파이가 되는 건 오버트라운 갈 때 뿐이었다. 원래 되는 거 아니었나?)






호수가 사라지고, 산이 사라지고, 집들이 점점 많아지더니 기차는 어느새 빈에 도착했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좋았던 곳이 어디냐고 묻는다면 아무래도 나는 오버트라운에서의 일정이라고 말할 수 밖엔 없을 것 같다.

나이를 먹어서 그런가, 내 성향이 그런가 산에 오르는 게,자연을 보는 게 점점 좋아진다. 더군다나 유럽처럼 케이블카가 발달한 나라에서라면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이 나이 먹도록 설악산에 아직 못올라가봤다...)


그렇지만 이번 다흐슈타인에서처럼 운 좋게도 일행을 만나 마음 편히 여행을 할 수 있는 게 몇 번이나 되겠는가....

아무래도 체력이 안 좋은 나에겐 자연풍경 보는 건 무리. ;;;;; (내가 워낙 느려서 일행에게 좀 미안하기도 했다) 패키지도 싫어하는 사람이니 참 여러 모로 성향과 상황이 잘 안 맞는다..쿨럭.

조용한 마을에서 편안하게 산책하고, 눈이 시원해지는 모습을 구경하고, 동물과 놀고 노작노작 시간을 보내는 여행. 그런 여행을 참 하고 싶은데, 혼자 다니긴 무서운 세상이라.

(사실 그 밤의 일로  많이 의기소침해졌다)


누군가 말하듯이 풍경의 甲은 스위스라는 것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 같다. 하지만 도시여행으로 점철(??)된 이번 여행에서 자연을 볼 수 있었던 잘츠카머구트의 여행은 그래서 그 의미가 크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하자면... 스위스에선 자연여행만 된다면 오스트리아에선 둘 다 된다~~~랄까.





아무튼 심호흡이 필요할 때 떠올릴 수 있는 풍경의 기억들을 만들어준 잘츠카머구트,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