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뽈뽈뽈/동유럽 2012

[체코]프라하-여행의 시작

라온그리메 2012. 8. 11. 16:59


-다른 사이트들 흉내내 본 타이틀. 타이틀만 요란;;;





 일행을 구하다구하다 못해 결국 혼자 떠나게 된 동유럽여행. 처음에는 호주, 그다음엔 인도. 세계 여러 나라를 헤매다가 결국 선택된 곳은 동유럽이었다. 프라하는 지난 여행에서도 가보고 싶었던 도시 중에 하나였던지라 그리 큰 부담없이 선택할 수 있었고, 이왕 가게된 곳이 체코이니 겸사겸사 오스트리아도 가보자~결정하였고, 헝가리까지 어쩌다보니 일정에 끼게 되었다.

비행기표를 알아보니 내가 원하는 날짜에 표가 없어서 돌아오는 날은 점점 느려졌고, 그러다보니 일정이 보름이 넘는 나름 대장정이 되고 말았다....

처음 가는 자유여행인지라 비행기표 구하고, 숙소 구하고, 도시간 교통편 알아보고, 관광지 대강 훑어보느라 몇개월을 지루하지 않게 보낼 수가 있었다. 아무 생각없이 떠났던 지난 단체배낭여행이나 예전 호텔팩이 얼마나 편한 것이었는지 다시 한 번 깨닫게 되는 나날들이었다. 흠....


출발일이 가까와지면 가까와질수록 예의 그 두려움-여행을 시작할 수 없는 어떤 일이 생길 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고생을 하였지만, 이번에는 큰 문제없이 (지난 번엔 늦잠을 잤음;;;) 공항으로 떠날 수 있었고, 비행기도 탈 수 있었다. 

비행기 안에서의 지루한 시간을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보내고 도착한 여행의 첫 도착지는 프라하였다.


 프라하의 입구인 루지네공항은 인천, 파리, 바르셀로나같이 큰 공항만 봐 왔던 나에게는 놀라울 정도로 작았다. 무엇보다 탑승통로와 내리는 통로가 같다는 거... 가게들이 무지 협소하다는 거. 황당함에 뻥~해질만큼.

 입국심사 역시 단순하게 도장 찍는 것으로 끝. 


체코에 도착하여서 가장 먼저 해야하는 일은 체코에서만 통용되는 체코화-코루나(코룬)을 atm기에서 찾는 일이었다. 코룬은 우리나라에서는 환전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헝가리의 포란트가 그나마 가능한 것과는 참 비교된다; 체코의 경우에는 통화를 유로로 바꾸냐 마느냐를 몇 번 반복해서 아예 우리나라에선 환전을 포기한 듯 싶다.) 미리 환전이 불가능하기도 하고, 여행하며 돈을 가지고 다니느 것이 부담스럽기도 하고 해서 미리 시티은행 체크카드를 만들어 둔 건 자랑 아닌 자랑. 큼.(시티은행 체크카드는 일부 국가에서 출국 서비스료를 1달러만 받는다고 한다. 돌아온 지금까지 그 말이 정말인지 확인 못해봤음. 사람마다 다 말이 달라서리;;;)


 출국심사를 마치고 나온 공항로비에서 쉽게 발견한 시티은행 atm기에서 2000코룬을 찾으니 1000코룬짜리가 두 장 나왔다. 뭔가 복잡한 용어들이 많이 나오는 atm기였는데, 그냥 무시하고 아는 말만 골라서 출금했다. 푸하하;;;; ㅡㅠ) 1000코룬은 우리돈으로 약 7만원정도.


루지네 공항에서 도심으로 가는 방법은 버스+지하철, 택시, ae버스 세가지였다. 택시는 워낙 바가지가 많다고 하여서 포기하고(우리나라도 공항택시의 바가지가 장난 아니지;;;) 버스+지하철은 도착하자마자 낯선 동네에서 짐을 들고 우왕좌왕하는 게 싫어서 꺼려졌다. 마침 공항버스가 숙소근처까지 가는 관계로 ae버스를 타기로 하고 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잠시 기다리니 도착한 공항버스를 타서 지폐를 내미니 아저씨가 황당한 표정을 하신다. 그래도 난 먼저 탄 편이라 돈을 얌전히 거슬러 받았는데,나중에 탄 사람들에겐 뭐라뭐라 잔소리.(참고로 공항버스 요금은 60코룬이다. 우리나라식으로 하면 버스타면서 10만원짜리 내밀었다는 얘기;;;)

ae버스는 공항버스이지만 짐을 실을 곳이 그리 만만치 않고 굉장히 작은 편인데 사람은 많이 탔다. 나야 앉아서 가서 큰 문제는 없었지만, 서서 가는 사람도 꽤 있었고, 짐 때문에 제대로 못 서 있는 사람도 있었다. 인천공항 갈 때 탔던 공항버스가 리무진 버스였던 까닭에(그냥 공항버스는 8800원인가 하는데 요건 15000...ㄷㄷㄷㄷ) 굉장히 비교되었달까. 차라리 좀 더 좋은 버스를 돈 좀 더 받고 운행하지 (느느;;


 꽤나 구불구불 도로를 따라서 공항버스는 몇 곳을 거쳐 흘라브니 나드리지(중앙역)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펄럭거리는 삼성 갤럭시 광고를 보니 나름 뿌듯. 버스에서 내려 근처에 건물도 없이 훵~한 도로에서 민박집을 찾아 한참 헤매다가 민박집에 도착하니 벌써 7시가 다 되어있었다. 다 저녁때라 어디 가기도 그렇고 해서 짐을 놔두고 일단 동네 구경을 나섰다. 


 민박집의 바로 앞에는 체코의 국립박물관이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수리중. 사실, 바로 옆의 건물에서 전시는 계속 하고 있었는데, 처음에는 몰라서 안갔고, 나중에는 알면서도 안갔다.(박물관 지겨워서리;;) 지어진지 오래된 건물도 아니라고 알고 있구만 뭔 공사를 몇년씩 하는지. 킁. 



 고개를 돌리자 바츨라프 광장이 눈에 들어왔다. 넓은 도로의 가운데로 사람들이 쉴 수 있는 공간이 있고, 주변에는 빽빽하게 건물들이 들어차 있었다. 꽃과 동상으로 장식된 거리를 보면서 문득 광화문광장이랑 흡사하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다음날 가이드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내 느낌이 맞다고...;;;(전오시장-오전시장이라고 해야하나;;;;;;;;;-이 프라하에 많이 삘을 받고 흉내내려고 애썼단다. 헐...)


 




광장의 동상.

바츨라프 광장은 신시가지라고 불린다는데, '신(新)'이라는 말이 무색하게도 몇백년된 거리라고 한다.... 



성 바츨라프(성 벤체슬라스)


국립 박물관 앞에 서 있는 말탄 동상은 1913년 건립 된 보헤미아의 수호신인 성 바츨라프이다. 

성 바츨라프는 국난의 시기에 중부 보헤미아의 그라니크 동굴에 잠들어 있는 기사들을 깨워서 이끌고 적을 격퇴시켰다는 전설의 왕이다.

http://www.thruguide.com/east/place.php?country=che&city=praha&area=oldcity&place=space01


그 유명한 프라하의 봄과 1980년대 벨벳혁명이라고 불리는 시민혁명이 일어났던 곳.

프라하의 봄 (체코어: Pražské jaro, 슬로바키아어: Pražská jar)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소비에트 연방이 간섭하던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일어난 민주화 시기를 일컫는다. 이 시기는 1968년 1월 5일에 슬로바키아의 개혁파 알렉산데르 둡체크가 집권하면서 시작되었으며, 8월 21일 소비에트 연방과 바르샤바 조약 회원국의 동맹국이 체코슬로바키아를 침공하여 개혁을 중단시키면서 막을 내렸다.

프라하의 봄 당시 둡체크는 경제와 정치면에서 부분적인 분권화를 실시하여 시민의 자유를 좀 더 보장하는 개혁을 시도하였다. 이 가운데는 보도, 표현, 이동의 자유 제한을 완화하는 것도 있었다. 또 둡체크는 두 개의 개별 공화국으로 이루어진 연방으로 개편하였는데, 이 조치는 프라하의 봄이 끝나자 다시 좌절되었다.

체코슬로바키아의 개혁은 소련측에서 달갑지 않은 일이었으며, 소련은 협상이 실패하자 장갑차와 탱크를 보내어 이 나라를 침공하였다. 대규모 이주 물결이 체코슬로바키아를 휩쓸었다. 한 학생이 자살 항의를 하긴 하였으나 사람들은 비폭력 시위로 대응하였으며 군사 저항은 없었다. 이 시기에 소비에트 연방군이 장갑차와 탱크를 앞세워 무고한 시민들을 죽이자 전 세계 여론의 비난이 일었다. 체코슬로바키아는 1989년까지 점령 상태가 된다.

체코슬로바키아를 침공한 소비에트 연방군은 당중앙위원회를 해체시키고, 민주화 운동의 지도자이자 체코슬로바키아의 1서기였던 알렉산데르 둡체크를 외국으로 망명시켰다. 바르샤바 조약군의 침공 이후 체코슬로바키아는 정상화의 과정에 들어가는데, 이후 지도자들은 둡체크가 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KSČ)을 장악하기 전에 우세했던 정치적/경제적 가치를 복원하고자 하였다. 둡체크의 뒤를 이어 집권한 구스타프 후사크는 대통령에 올라 두프체크의 모든 개혁을 무효로 돌렸다.

http://ko.wikipedia.org/wiki/%ED%94%84%EB%9D%BC%ED%95%98%EC%9D%98_%EB%B4%84


벨벳혁명


1989년 11월 17일 금요일에 폭동 진압 경찰이 프라하에서 일어난 평화적인 학생 시위를 억압하였다.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11월 19일부터 12월 말까지 대중 시위가 이어지게 된다. 11월 20일에 프라하에 운집한 평화 시위자의 수는 전날 200,000여 명에서 500,000여 명으로 불어났다. 11월 27일에는 체코슬로바키아의 모든 시민이 참여하는 가운데 2시간의 총파업을 결행하였다.

다른 나라 공산주의 정권이 무너지고, 거리 시위가 늘어나면서 체코슬로바키아 공산당은 11월 28일에 당이 권력을 포기하고 일당제 제도를 폐지하겠다고 발표하였다. 12월 초에 오스트리아, 서독과 체코슬로바키아의 국경에서 철조망과 여타 장애물이 제거되었다. 12월 10일 구스타프 후사크 대통령이 1948년 이래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처음으로 非공산당 정부를 지명하고 사임하였다. 알렉산데르 둡체크가 1989년 12월 28일에 연방 의회 의장으로 선출되고, 다음날 바츨라프 하벨이 체코슬로바키아 대통령직에 올랐다.

1990년 6월에 체코슬로바키아는 1946년 이래 처음으로 민주적인 선거를 치렀다.

"벨벳 혁명"이란 말은 국제 사회에서 이 혁명을 지칭하는 표현으로, 체코 내부에서도 이 표현을 쓴다. 1993년 체코슬로바키아가 해체되면서, 슬로바키아는 슬로바키아 사람들이 처음부터 쓰던 표현인 "신사 혁명"이란 말을 쓴다. 체코 공화국에서는 계속 이 사건을 "벨벳 혁명"으로 칭한다


.http://ko.wikipedia.org/wiki/%EB%B2%A8%EB%B2%B3_%ED%98%81%EB%AA%85




잠시 바츨라프 광장을 돌아보고 다음날을 기약하며 윗쪽으로 올라갔다.



오페라 하우스...였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날이 이래서 그런가 검색하려면 컴퓨터가 다운되서 나중으로 패스;;;



멀리서 보이는 현대광고에 이끌려 그쪽으로 갔다. 현대자동차가 체코에 축구단도 있는건지?




뭐에 쓰는 건물인지는 그 당시에는 몰랐다. 단지, 무지 낡아서 '음... 허물려다 놔둔 건가?'했을 뿐 떠나는 날 알게 된 사실-이 건물이 프라하의 중앙역이라는 거. 헉.... 다 무너져가던데? 안쪽에서 봤을 땐 더 엉망...(건물의 얼굴인 입구가 정말 ;;;;)  이 중앙역덕분에 체코에 대해 좀 더 많이 생각할 수 있었다. 




때마침 서쪽으로 노을이 져서 풍경이 아름다웠다.












어슬렁거리며 돌다보니 알베르트라는 광고판이 보인다. 아싸, 수퍼닷!!!



곧 찾아간 수퍼. 물을 사서 들어왔다. 체코에는 몇 개의 수퍼체인이 있는데, 대놓고 광고를 붙이는 곳은 이곳뿐인 듯 하다. 

billa는 오스트리아에도 있었는데 체코에는 흔하진 않았고, 유명한 테스코는 그야말로 거의 안보이게 숨어있는 느낌이랄까-. 나름 소상권 보호일까?


 

 











 들어오는 길에 찍은 민박집의 내부. 낡은 건물이었는데도 내부는 이렇게 화려하였다. 눈이 휘둥글.... (관리가 썩 잘되고 있지는 않았다)

이렇게 프라하에서의 첫날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