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뽈뽈뽈/동유럽 2012

[체코]프라하-카를교를 건너서

라온그리메 2012. 8. 19. 18:32

 

 

 

 

 

 비투스 성당을 본 후 궁전 한 곳을 더 구경하고 황금소로를 찾아갔다.

여행 준비할 때 다큐를 보면서 무척 멋진 곳이라고 기대하였더랬는데, 실제로 보니 정말 작은 골목이어서 솔직히 실망하였다.

'황금'이라는 말이 연금술사 때문에 붙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뭔가 좀 더 대단한 걸 기대하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카프카의 집필장소였다는 곳 역시 너무 협소하여 구경하기조차 힘들 정도여서 일행들은 모두 사진만 찍고는 거리를 벗어났다.

 

 

 

 

 

 

 

 

 

 

 

 

마지막 집은 영화관련 박물관인듯 했다.

 

 

 

황금소로 끝에는 고문실이 있었는데... 어디나 고문실은 무료한 현대인의 감각을 자극한다는 의미에서 관광지로 개발되는 모양이다. ;;;;

 

 

 

 

프라하궁도 궁전이라 궁중정원이 있다. 일행을 따라 가느라 제대로 둘러볼 수는 없었지만

찬찬히 본다면 화려한 꽃과 땡볕(;;;)이 적으니 더 쉴 수 있겠지...

궁중정원 담 너머로 보이는 프라하의 풍경도 멋지고 말이다.

 

 

 

 

 

 

 

 

 

 

프라하성을 나오기 전에 마지막으로 지나친 장난감 박물관.

물건은 많지만 그리 정돈된 느낌이 아니라는 예전 다른 분의 포스팅을 본 일이 있어서 그다지 끌리지는 않았다.

박물관 앞의 동상은 카프카라는데 한곳만 반짝반짝....;;;;;

 

 

 

 

 

 

 

 

 

 

 

 

 

 

프라하궁에서 내려오는 경사지에는 화려한 건물과 가게로 가득찬 골목이 있는데, 이곳을 네르도바거리라고 부른다고 한다.

우리나라로 치면 육조거리 쯤 되려나? 아무튼 예전부터 비싼 땅값을 자랑했다고 하는 이 거리의 건물들은 지금도 가격이 후덜덜하다고 한다.

비싼 땅값과는 별개로 가게들은 아기자기 예뻐서 다음날 다시 한 번 찾아온 거리이다.

 

 

 

 

 

 

 

그다음 찾아간 곳은 존레논의 벽.

사회주의 국가 시절 체코는 사상의 자유를 억압하였는데, 그 중 하나가 음악을 듣는 것에 대한 자유였다.

무정부주의 비슷한 분위기의 노래를 불러 제끼던 히피들의 우상인 존레논이 죽었을 때 프라하의 많은 젊은이들은 그 슬픔을

이곳 벽에다가 표현했다고 한다.

 

허구많은 벽들 중에 왜 이곳이냐~하면, 이 벽이 말타기사단(몰타기사단)이라고 부르는- 일종의 치외법권적 건물에 속해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몰타 기사단(-騎士團,

 

 

성 요한의 예루살렘과 로도스와 말타의 주권 군사 병원 기사단, 이탈리아어: Sovrano Militare Ordine Ospedaliero di San Giovanni di Gerusalemme di Rodi e di Malta)은 1080년 성지를 순례하는 순례자들을 위해 예루살렘에 세워진 아말피 병원에서 시작된 종교기사단의 이름이다. 지역에 따라, 병원 기사단, 구호 기사단, 로도스 기사단, 성 요한 기사단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제1차 십자군 원정 당시 예루살렘 정복(1099년) 이후 로마 가톨릭의 군사적인 성격을 띤 기사단으로 성지와 순례자들의 보호를 위한 조직으로 발전하였다. 팔레스타인에서 기독교 세력이 축출된 이후 기사단은 로도스 섬으로 근거지를 옮겼으며, 1522년 오스만 제국에 의해 로도스 섬에서 쫓겨나서는 다시 스페인 관할의 몰타로 이주하였다. 이들은 몰타 섬에 자리잡고 주권까지 있는 나라였지만 1789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이끈 프랑스군에게 정복당했다. 그러나 몰타 기사단은 그 이후에도 살아남아 현재도 로마에 본부를 두고 존재하고 있으며, 독자적인 헌법과 법원 등 독립국으로서 갖춰야 할 요소들을 영토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요소들을 갖추고 있고, 현재까지 국제법 상 주체로 인정 받고 있다.
현재 이탈리아를 비롯한 기독교 국가들뿐만 아니라 이집트, 아프가니스탄, 타이 등 비기독교 국가들도 몰타 기사단을 나라로 인정하고 있으며, 전 세계에 퍼져있는 단원들이 의료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외교 사절, 자국 등록 선박, 자체 자동차 번호판 등을 갖고 있고, 우편 협정을 유지하고 있는 몇몇 나라들에서만 통용되는 우표도 발행함으로써 영토 없는 국가로 불리기도 한다.

 

http://ko.wikipedia.org/wiki/%EB%AA%B0%ED%83%80_%EA%B8%B0%EC%82%AC%EB%8B%A8

 

물레방아 근처의 열쇠다리...

 

솔직히 이 자물쇠 걸어놓는 거, 별로 안좋아하는 사람이라서 기분이 영 별로였다.

(남산만으로 족한데 너무 흔해... 너무 보기 싫어...--------자물쇠 걸 일이 없어서 그런가?)

 

그리고 그 유명하다는 카를교에 도착하였다.

 

이 다리에는 꽤 많은 성인상이 있는데, 진품들은 이제 슬슬 박물관으로 자리를 옮기는 중이라고 한다.

여러 성인 중 가장 유명한 것은 네포무크의 요한.

 

 

 

네포무크의 성 요한(라틴어: Sanctus Ioannes Nepomucenus, 1345년경 - 1393년 3월 20일[1]) 또는 성 요한 네포묵은 체코의 국민적인 성인으로서 보헤미아 국왕이자 로마왕이었던 벤체슬라우스에 의해 블타바 강에 내던져져 익사를 당하였다. 전해지는 바에 의하면, 성 요한은 보헤미아 왕비의 고해신부였는데, 왕비에 대한 고해성사의 내용을 밝히라는 왕의 요구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순교를 당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네포무크의 요한은 고해성사의 비밀을 준수하기 위하여 목숨까지 버린 최초의 순교자이자 다른 사람으로부터 비방을 받은 사람들의 수호성인이 되었으며, 또한 강물에 빠져 익사하였기 때문에 홍수 피해자들의 수호성인이기도 하다
http://ko.wikipedia.org/wiki/%EB%84%A4%ED%8F%AC%EB%AC%B4%ED%81%AC%EC%9D%98_%EC%9A%94%ED%95%9C

 

사실 비투스 성당에서 너무 많은(???) 성인들의 이름을 한꺼번에 들어버린 탓에 누가누구인지 완전 뒤죽박죽이다. 하하하;;;;

 

아무튼 이 성상의 아래 그림에 손을 대고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고 하여서 다들 한번씩 소원을 빌고 사진찍고 간다.

 

 

 

 

 

 

 

참고로 사람들이 아무 생각없이 손을 대고 소원을 비는 저 금색의 여인은 바로 바람피운 왕후... 그러니까 그 왕후 말고 위에 떨어지는 사람에게 소원을 빌어야 한다. 쿨럭.

나도 가족의 건강을 빌었는데.... 잘 지켜지려나? 아무튼 그대의 능력을 믿어보지요, 네포묵신부님.

 

요 그림 옆에 그림이 하나 더 있는데, 거기서는 개 한마리가 반짝거린다.

요 개를 만지면 평생 배우자에게 성실하게 된다고 한다. 나랑 상관없군. 큼.

 

 

 

 

 

 

 

 

 

카를교를 건너 구시가광장으로 들어서니 넓은 광장과 뺑 둘러싼 건물들이 보였다.

이곳의 건물들은 각시대의 유명한 건축양식들을 보여주고 있어서 건축의 박물관이라고도 불린다고 한다.

 

 이후 내내 길을 잃고 헤매다가 흘러들어오게 되는 곳이 이 구시가 광장이었구(쿨럭)

질리게 본 것이 바로 저 틴 성당과 천문시계.

틴성당이라고 불리게 된 이유는 뒤쪽에 세무관련 건물(틴?)이 있었기 때문이라나?

그런데 프라하에 그리 오래 있으면서도 안 들어가봤다. 그 이유는?? 아마도 입구를 못찾아서가 아닐까? 쿨럭.

 

 

 

 

 

 

 

 

얀 후스(Jan Hus, 1372년? ~ 1415년 7월 6일)는 체코의 신학자이자 종교개혁자이다. 그는 존 위클리프의 예정구원설을 기반으로 성서를 기독교 믿음의 유일한 권위로 인정할 것을 강조하는 복음주의적 입장을 보였으며, 교황 등 로마 가톨릭 교회 지도자들의 부패를 비판하다가 1411년 대립 교황 요한 23세에 의해 교회로부터 파문당했으며, 콘스탄츠 공의회의 결정에 따라 1415년 화형에 처해졌다.

하지만 그가 화형당한 이후 그의 신학사상을 이어받은 사람들이 보헤미안 공동체라는 공동체를 만들고, 그의 주장은 마르틴 루터 등 알프스 이북의 종교개혁가들에게 영향을 끼치게 된다.
http://ko.wikipedia.org/wiki/%EC%96%80_%ED%9B%84%EC%8A%A4

성당 앞의 얀후스 동상. 성당 앞이다, 성당 앞.

원래는 얀후스가 바라보는 자리에 마리아동상이 있었다고 한다. (째려보는 형상)

 

 

 

 

 

 

 

 

그리고 프라하의 명물 천문시계.

 

시간, 분, 날짜, 계절, 해야할 농사일, 날짜별 성인, 별이 뜨는 시간, 해의 위치 등등을 알려주는 이 시계는 시간마다 조각들이 열심히 움직이기도 한다.

 

 

이런 멋진 시계를 다른 동네에서 못만들게 하기 위해 제작자의 눈을 멀게 했다는 이야기가 있고, 그래서 뭔가 고장나게 했었다는데, 잘 기억나지 않으니 패스.

매 시간 종소리 다음에 나팔을 불어주는데, 이건 체스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뭔가 이유가 있을듯 한데.

 

이 건물은 예전에는 시청으로 쓰였다고 한다. 지금은 관광안내소이다.

전망대에 오르려면 입장료를 내야한다. 입장료는 시계 오른쪽, 올라가는 곳은 왼쪽에 있어서 헤매는 (나같은)사람도 있다.

매표소는 10시부터 개장. 더 일찍 절대 안열어준다. 흠....(나같으면 9시 50분쯤 열겠다. 그럼 10시 나팔을 위에서 구경할 수 있잖아)

 

 

시계탑 구경이 끝난 후 바츨라프 광장에서 프라하의 봄에 대한 설명을 듣고 프리투어는 끝을 맺었다.

 

확실히 가이드투어를 하면 아는 게 많아지는 건 무척 좋다. 근데 뇌용량의 한계를 자꾸 느끼게 되고, 무엇보다 힘이 들어서리........

 

근처에서 저녁을 대충 때운 후 야경을 보러 다시 길을 나섰다.

 

 

 

 

 

 

 

 

 

 

 

 

 

 

 

프리투어 때 들은 야경포인트에서 한 장.

 

 

 

 

 

 

 

 

 

 

돌아오는 길에 또 얼마나 길을 헤맸는지는 말하지 않기로 하자........;;;;;

 

 

그리고 프라하에서의 두번째 날이 끝났다.... 진짜 길었던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