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온그리메의 [바람의 시간]
봄을 찾으러 간 제주- 올레 15코스 본문
긴 겨울이 끝날 생각을 도통 하지 않았다. 따뜻한 봄날이 어찌나 그리운지 이런 저런 걱정이 많았음에도 또 덜컥 제주행 비행기에 올랐다.
성수기와 주말을 피해서 1년에 거의 유일하게 연속으로 놀 수 있는 4월. 작년에도 역시 같은 날 제주에 있었더랬다. 아마도 이런 봄 여행은 앞으로 몇년은 계속 될 듯하다.
코스를 정하는 것부터 난관인 여행이었다.
예전엔 그냥 몇코스, 몇코스 가야지~라고 떠났더랬는데, 이번엔 왜 그리 가파도가 가고 싶은지... 그런데 반나절코스이다 보니 이래저래 일정이 꼬이는 것이었다. 도대체 몇시에 배를 타야하는지, 탈 수나 있을지.
"에이, 몰라. 가서 보고 정하지 뭐."
라는 무대포 정신으로 그냥 나섰다.
제주 여행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중에 하나는 비행기에서 보는 풍경이다. 하지만 이 날은 전날 너무 늦게 자서인지(3시간) 밖이 흐린 것을 확인하자 마자 잠이 들어 도착하기 직전까지 계속 자기만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제주도에 가까와졌을 때 잠이 깼다는 것인데, 놀랍게도 한라산이 그 새침한 얼굴을 환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15코스에 가기로 하고 시외버스를 탔다. 예쁘게 기계가 들려주는 "환승할인이 적용되었습니다."
응, 알아. 고마워.
요 소리 듣기 위해 샀던 제주t머니. (1000원 할인된다. 카드가격은 4000원...ㅡㅡ;;;;)
드디어 이번에야 활약을 하게 되는구나.(지난 여름에 사서 가을, 겨울 여행땐 쓰질 못했다;;;)
15코스 한림항으로 가는 중엔 잠이 좀 깨서 밖을 계속 구경하면서 갔다. 지나가는 길에 보이는 게스트하우스들.
아, 내가 조금만 덜 예민했더라면 게스트하우스에서 재미있게 묵을 수 있을텐데...참 아쉽다. 하지만 나이가 나이인지라 몇만원 아끼느라 불편한 잠(소리에 굉장히 민감하다;;)을 자기는 싫었으므로....(먼산)
한림항에 도착하여 올레코스를 찾아 걸었다.
비린내를 풍기는 생선들. 날씨가 좋아서 이런 것도 보는 구나.
멀리 비양도가 보인다. 비양도에는 케이블카가 설치될 뻔 했다고 한다. 개인적으론 아쉽지만(걷는 것이 무지 싫은 1인. 응???) 풍경이나 자연보존 측면에선 당연히 다행스러운 일이다.
바닷가에 세워놓은 솟대들.
솟대들을 보면 어쩐지 묘한 기분에 빠져들곤 한다. 하늘을 나는 새. 새를 부르는 사람들. 그렇게 세운 솟대들. 솟대의 새들은 날지 못하고 그저 기원하기만 한다.
입구쪽에서 한 노부부를 만날 수 있었다. 올레협회장과 아는 사이인지 15코스는 초반에 지루하지만 나중에 멋지다는 얘기를 전해주신다. 그리고 어정어정 주변을 찍으며 걷는 사이 저~~~멀리로 사라지셨다.
제주는 완연한 봄이었다. 등산자켓은 도저히 입고 있을 수가 없어 배낭에 묶어버렸다. 하지만 폴라폴리스 점퍼까지도 더워 견디기 힘들었다. 나중엔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배낭만 허락되었다면 그것도 벗고 걸었을지도....
가던 길에 만난 맹꽁이(?). 볼을 부풀리며 우는 것이 어찌나 웃긴지. 하지만 내가 가까이가자 눈치만 슬슬보며 모른 척 하는 것이다.
에이, 얄미운 녀석....
15코스의 난관, 영새샘물길.
요 돌다리가 가운데가 똑 끊어져있다. 그런데 그게 거기까기 가기 전엔 안보인다. 돌다리 대신 작은 돌이 대신 놓여져있다. 건너뛰기엔 너무 넓다.
예전 곰배령의 악몽(?)이 떠오른다. 지리산의 악몽(??)도 떠오른다.
혼자서 낯선 길을 걷는 주제에 겁이 많다고 하면 사람들이 웃을지도 모르겠지만, 난 정말 겁이 많다.
특히 형편없은 균형감 때문에 더욱 겁이 많다. (기본적으로 나는 내 몸을 믿지 않는편이다;;)
미끄러지면 대략 난감할 상황.
어찌할꼬~고민하다가 좁은 돌 위에서 가방을 돌려 등산스틱을 꺼냈다. 여기 저기 딛여보니...헉, 오른쪽으론 물이 깊다. 위험, 위험.
왼쪽으로 단단하게 스틱을 누르고 작은 돌 위에 발을 올린다. 켁, 건들거리잖아. 덜덜거리는 손에 힘을 꽉 쥐고 재빨리 건너편 돌다리로 올라간다.
.............
그냥 딛고 통 뛰면 되는 것을 혼자 영화 찍듯...푸하하하;;;;
누가 봤다면 얼마나 웃었을까? 하지만 나에겐 참으로 긴장되는 순간이었고, 너무 긴장한 탓에 기운이 다 빠져버렸다.....(먼산)
계속 길을 걷는다. 밭길은 역시 좀 지루하다. 14코스는 밭길도 아기자기 재미있었는데 15코스는 그냥 무난한 편이다.
땡볕에 얼굴은 지글지글 익어가고 지나는 사람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지나는 차도, 일하는 사람도 거의 없다.
중간중간 나오는 도로엔 큰 화물차들이 달려서 겁도 난다.
납읍숲길을 기나는데, 멀리 정자가 보인다. 와~ 저기서 쉬다가 가야지. 오랜만의 과격한(?)운동에 풀려버린 다리를 움직여본다.
무슨 비밀의 화원도 아니고.... 알고 보니 어떤 집 별장 마당의 정자였다. 들어가는 문도 예쁘다. 하지만 지나는 객은 그저 아쉬울 뿐...
납읍초등학교의 금산공원에 들어섰다. 힘이 든다.
금산공원은 참 분위기 있고 시원하다. 하지만... 패스.
납읍에서 버스를 타고 나와버릴까 말까 무척 고민하다 간선버스가 30분후에야 오는 관계로 기다리느니 걷자며 다시 걷기 시작했다.
카메라는 쑤셔넣고, 아등바등 걸었다. 옆도 안돌아보고 노래를 불러 제끼며 걸었다.
이를 악물고 백일홍길에서 도새기숲길을 지나 고내봉입구로 갈 무렵...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니, 내가 왜 이리 어거지로 이를 악물고 걷고 있는거야? 사진찍으며 천천히 걷자고 떠난 여행 아니야?
맞다. 고생할 필요가 무에 있을까? 때마침 나타난 도로를 따라 애월읍으로 들어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남은 거리는 4km. 하지만 자꾸 흐려지는 하늘이 걱정스럽기도 하고, 다리에 무리가 갈 것이 걱정되기도 하고, 무엇보다 이갈리게 무거운 가방(총 짐무게 약 8kg)을 벗고 싶은 마음에 코스를 그곳에서 접었다.
열개의 코스를 걸었는데 그 중 4개를 꺾은 셈이다. 60%의 성공률이라... 흠....
사실 한 번 접은 코스를 다시 찾아가 걷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무엇보다 걸은 곳 걷기는 싫거니와, 중간부분은 찾아가기도 힘들기 때문에)
자꾸 늘어나는 접기가 어째 좀 그렇지만, 그래도 뭐.....
숙소를 어디에 정할까~하다가 그냥 서귀포로 들어가기로 했다. 그나마 지난 여름 몇일 묵었던 곳이라 지리도 익숙하고, 근처에 반일치기로 놀만한 곳도 있으니 말이다.(월요일 비 예보가 있었음)
민중각에 전화를 하니 방이 없다기에 그냥 근처의 작은 모텔에 묵기로 했다. 숙박비는 25000원. 생각보다 5000원 싸기에 하루 묵고 마음에 들면 하루 더 묵기로 마음 먹었다.
저녁은 간단하게 근처 마트에서 산 과일로 때우고(한라봉이 하나에 1000원!!!!!!) 첫날 일정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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