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온그리메의 [바람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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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찍자/음식

조개야, 조개야

라온그리메 2009. 12. 23. 19:47







 난 생선회를 못먹는다. 어릴 때 tv에서 보았던 회뜨는 장면이 너무 충격적인 탓에 지금까지도 도저히 먹을 수가 없다. 하지만 그래도 해산물은 싫어하지 않는 편이다.

 요번에 처음 먹게 된 조개구이... 아무 생각없이 기대를 했는데, 워낙 tv에서들 맛있다고 하니까. 하지만  조개들이 뜨거운 불 위에서 입을 열었다 닫았다 하는 걸 보고 너무 충격을 받았다. 조개들은 '살아있었다'. 

 사람들 다 모인 자리에서 '못먹어요, 비위 상해요.'라고 말하기 뭐해서 바싹 구워서 깨작깨작 먹기는 했지만 속이 울렁거렸다.(물론 생각보다 많이 비려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비린 건 못 먹음) 앞으로 아마 절대 조개구이 찾아 먹을 일은 없을 듯하다.(뻐끔거리는 거 안보려고 눈을 가리고 있었다.... 덩치에 안 어울리게 무슨 작태람;;;) 음... 이런 얘기하면 좀 그렇지만 소설 '더 로드'의 한 장면이 떠올라 버렸달까...(거기선 산채로 굽지는 않았지만;;;)



로드(THE ROAD)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코맥 매카시 (문학동네,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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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차피 배 속에 들어가는 건 똑같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 앞에서 죽는 건 보기 싫다고 하는 건 너무 이중적인 모습일까? 내가 먹는 거 어차피 전부 살아 있던 것들인데, 하다 못해 풀떼기라도.

 대게는 잡을 때 눈을 잘라내고 거기에 뜨거운 물을 붓는다지? 죽은 다음에 익혀야 맛이 있다고. 개는 때려야 육질이 연해진다고 매달아놓고 패고... 입을 뻐끔거리는 생선머리는 신선한 생선회의 증거가 되기도 한다. 거위 발바닥 요리를 위해 뜨거운 철판 위에 거위를 올려놓고, 푸아그라를 위해 거위의 입에 깔데기를 끼워놓고 음식을 쑤셔 넣는다고도 한다.
 부드러운 육질을 위해 소를 갈아 먹인 닭을 재료로 만든 사료를 다시 소에게 먹이기도 한다.(이게 광우병의 시작이라고 했던가?) 
 좁은 닭장 안에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키워지며 알만 낳아대는 닭들. 태어나자마자 경제성의 이유로 죽임을 당하는 수평아리들과 숫송아지들. 모피의 윤기를 위해 산 채로 껍질이 벗겨지는 동물들..... 



 
  어차피 조개들은 산 채로 끓는 물에 들어가는 게 일반적이다. 잘 먹는 바지락 국수의 조개가 내 눈 앞에서 죽는 게 아니라고 불판 위에 올라간 조개보다 덜 불쌍하다고 하는 건 어처구니 없는 오만일 뿐이다. 정이 그런게 싫으면 채식주의자나 되어야지. 그러지도 못하는 주제에. 쳇.


 하지만


 적어도 '나'는 내 눈 앞에서의 그런 모습은 안 보련다. 그게 비록 이중적이고, 오만한 인간의 모습이라고 하더라도.


 그냥

 그러고 싶으니까. 그래야 마음이 편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