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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입은 정령들의 숲

라온그리메 2008. 8. 31. 15:01

 토요일 오후, 안양예술공원에 갔다. 날씨가 점점 흐려지는데 너무 늦게 간 탓에 건진 사진은 얼마 없었다. 이번에 다시 본 정령의 숲.... 저번과는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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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령의 숲

이승하/한국

기이한 인물상들을 도예기법으로 제작하고 숲 속 곳곳에 설치한 작품. 기이한 인물상들은 숲 속에서 자신만의 새로운 에너지를 발산하고 숲을 신비로운 정원으로 탈바꿈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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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는 것이 작품 해설인데....................
솔직히 맘에 들지 않는 해설이다.

 정령의 숲 속의 정령들은 하나같이 슬픈 모습이다.
 그들의 몸 곳곳에는 상처가 나 있다. 심장에, 어깨에 여기저기에 뚫린 구멍들. 팔은 잘려져 나가고, 몸은 누더기처럼 기워져있다. 심지어는 머리를 다른 것으로 바꿔버린 것도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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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에 큰 흉터가 있고 가슴에는 구멍이 난 조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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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으로는 멀쩡해보일지 몰라도 실은 엉망이 되어버린 몸 위로 새로이 얹혀있는 머리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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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망으로 구멍난 몸을 보아달라는 듯이 손을 들고 있다


 그들의 자세는 하나같이 안으로 향한다. 위를 보지 않는다. 팔은 자신의 몸 가까이에 있고, 자세는 웅크리고 있거나  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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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난 몸이 흩어지지 않도록 끌어앉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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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는 다른 것으로 대체되어 있다

 인물들은 모두 각각 흩어져있으며, 가장 안쪽의 사원처럼 보이는 건물조차 다 허물어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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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전으로 보이지만 허물어져가는 건물.

  어찌보면 그로테스크한 이 작품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 끌리는 것은 그들의 표정이, 자세가 고요하기 때문일것이다. 포기라고 해야하나? 아니면 달관이라고 해야하나?  다분히 의도적으로 보이는 눈물자국들조차도 말라버린 것처럼 보인다. 결코 많이 드러내지 않는 감정들이 맘에 들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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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이번에 가서 다시 보게 된 작품하나가 심장에 와서 꽂혔다.  다른 작품보다는 훨씬 덜 기묘한 모습. 하지만 원망스러운 눈빛이라니. 스러지는 빛의 장난이었을까? 하고픈 말을 가슴 가득 담아두고 있으면서 눈을 내리 깐 채 입을 차마 열지 못하는 듯한 굳은 표정. 어찌보면 눈물이 글썽거리는 듯한 모습이 눈에서 떠나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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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득 이 작품들을 만든 작가의 성별이 궁금해졌다. 만약 작가가 자신의 내면을 나타내고자 한 것이라면, 그리고 여자라면- 작가는 과연 어떤 경험을 하면서 살아온 것일까? 왜 손을 나타내는 것에 특별한 의미를 둔 것일까?

 시간에 따라 달라보이는 기묘한 정원. 상처입은 정령들이 다음을 위해 쉬는 곳인지, 움추려 한없이 침잠하는 곳인지 혹은 나름대로 '에너지를 발산'하는 곳인지는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어쩐지 다가가 어깨를 보듬어주며 함께 맘 편하게 울어보고 싶어지는 곳이었다, 나에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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